"네? 뭐라구요?"
교무실로 불려간 민지는 담임 교사의 황당한 말에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민지의 담임 교사인 지유나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민지를 보며 다시 말했다.
"그.. 유서에 네 이름이 적혀있대 민지야."
민지네 반은 최근에 자살한 '김지혜'란 학생때문에 한참 떠들석한 상황이였다.
경찰의 지시로 여름방학이 시작됐음에도 반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해 한명씩 담임 교사나 경찰에게 질문을 받아야했고 아이들은 속으로 김지혜에 대한 욕을 삼키며 조사에 응했다.
가뜩이나 방학에 학교로 나와야해서 짜증나는데 그 와중에 유서에 자기이름이 적혀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민지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민지와 눈을 맞추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주렴. 정말 지혜를 괴롭히지 않았니?"
유나의 물음에 민지는 생각했다.
켕기는 것이 있다면 여름 방학 시작 하고 얼마 안되서 지혜에게 만원을 빌려간 것이다.
솔직히 빌려갔다..기엔 약간 억지로 뺏었나? 싶었지만 돈을 준 것도 지혜 본인이였고 그 상황을 같이 지켜본 친구들이 있었기에 민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였다.
민지는 예전부터 자신을 노려보는 경우가 있던 지혜에 대해 불쾌한 기분을 해소시켜보려고 한 행동이였는데 설마 그것때문에 자살 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 제가 지혜의 돈을 빼앗았어요.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민지는 오히려 표정을 굳히며 정색하곤 유나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하세요 선생님? 애초에 저랑 지혜는 연관도 하나 없고 오히려 걔가 맨날 저 노려보고 다녔거든요? 반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김지혜가 평소에 얼마나 음침하게 굴었는데요."
유나는 오히려 민지가 당당하게 말하자 생각했다.
반에 관심이 많은 유나 역시 당연히 지혜와 민지 중 누굴 더 믿겠냐고 한다면 민지였다.
항상 아이들을 이끄는 리더쉽 있고, 성적은 최우수하며, 모범적인 태도와 외모를 갖춘 민지와 성적은 뛰어나지만 항상 교실 구석에서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지혜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래, 선생님도 우리 민지 믿고 있어. 선생님 말에 기분나빴다면 사과할게."
유나는 행여 민지가 상처받았을까 사과하면서 민지를 다독였다. 민지 역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님이 가장 힘드실텐데 제가 의심받는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울컥한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물론 전혀 반성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유나에게 자신에 대한 신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민지는 연기하고 있었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민지를 돌려보냈다.
그 이후로도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엔 아이들은 한결같이 민지의 편이였다.
"김지혜 걔 맨날 구석에서 민지 노려봤어요."
"언제 봤는데 성적표를 막 구기면서 민지 욕을 중얼거렸구요."
"지혜랑 중학교 동창인데 원래 얘가 열등감이 좀 심했어요."
죽은 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것을 대변해주는 것은 남은 사람들이였다.
당연하게 반 아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있는 민지 대신 지혜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지혜의 자살은 결국 우울증을 앓고 있던 지혜가 열등감을 민지에게 표출하며 자살한 것으로 막을 내렸다.
겨우 간신히 여름방학을 돌려받은 민지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평소에 잘 뚫리기로 유명한 술집에 앉아있었다.
"고생했어 민지야. 어떻게 그러지?"
혜윤은 민지의 뒤에서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했다.
민지는 대답했다.
"으응.. 그러게, 왠 병신같은 찐따년때문에 인생 큰일날 뻔 했네. 아~ 거기 좋아~"
하도 많이 어깨를 주무른 탓에 혜윤은 민지가 좋아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민지는 어깨를 오랫동안 주무른 혜윤에게 앉으라는 권유 없이 앞에 앉은 다른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럼 민지야, 잘 해결된거지?"
민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냥 걔가 정신병 있는 미친년이라서 나한테 열등감 폭발해서 그런거라고 했어."
"ㅋㅋ 어떻게 고작 만원 가져간걸로 죽지? 게다가 돌려주려고 했잖아."
"그치~"
지혜에 대한 죄책감은 1도 없이 민지와 친구들은 낄낄대며 지혜를 고작 만원에 죽은 미친년이라고 비웃었다.
애초에 이들에게 지혜는 그런 존재였다.
인생 살면서 반이 갈라지는 순간 전혀 마주칠 일도 동등해질 일도 없는 존재.
지혜가 자살까지 하면서 저주했지만 그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 혜윤아 그만해도 돼, 이제 너도 좀 앉아."
"으, 응!"
혜윤은 중학교때 왕따당하던 걸 도와준 은인인 민지에게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 왕따의 주동자가 민지라는 걸 평생 알 지 못한채 그녀의 부탁이라면 모든지 들어주는 친구를 위장한 노예였다.
"고생했어 혜윤, 이거 먹어."
물론 민지도 혜윤과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녀에게 친근함,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정확히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우정이라기보단 주인과 애완견 사이의 우정 정도였겠지만 타인의 감정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민지에게 있어 그정도만 되도 충분히 친한 사이였다.
"아, 혜윤아. 내일은 소민이나 불러서 같이 놀까?"
"소민이?"
혜윤은 중학교 때 친했으나 지금은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소민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빛냈다.
세 사람은 중학교 때 같이 쇼핑도 가고 여행도 가면서 지내온 추억이 많은 사이였다.
"응! 그러자, 좋은 생각이야 민지야."
혜윤이 동의하자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내일 점심 쯤? 카페에서 보는 걸로 해두지 뭐. 자, 이제 미친년이야기 그만하고 먹자, 곧 아는 오빠들도 올꺼야."
건배! 하며 그들의 술자리는 깊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들킬 일 없었기에 민지는 더욱 과감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중이였다.
"후우.."
한편 유나는 한숨을 쉬며 지혜의 유서 사본을 책상에 두고 의자를 뒤로 기대 누웠다.
"한참 바쁠때인데.."
최근 남자친구에게 청혼받은 유나는 원래라면 지금 결혼 준비로 한참 바빠야했지만 맡고 있던 반의 학생이 자살하자 계속 학교에 불려와 담임으로서 책임을 추궁받고 있었다.
반 아이들도, 민지 본인도 증언했듯 지혜는 전혀 조짐없이 자살했다고 발표했고 유나는 지혜와 상담한 내역을 제출함으로 담임으로서 모든 책임을 다했다는 증거를 제출했다.
사건은 거의 마무리 되어갔고 유나가 지혜가 자살한 문제 때문에 학교에 불려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였다.
"미안해 지혜야, 좋은 곳 가렴."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기에 유나는 작게 명복을 빌어주곤 지혜의 유서 사본을 세절기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켜 약혼자인 현식과 내일 결혼식장 알아볼 약속을 잡으며 그녀는 지혜를 머리에서 잊은 채 결혼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며 학교를 떠났다.
지혜의 유서 사본은 그렇게 조각조각 나 세절기 종이쪼가리가 되었다.
"끄윽~ 아.. 너무 마셨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마친 민지는 휘청거리며 혜윤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으로 갔다가 엄마에게 들키면 큰일났기에 혜윤의 집에서 자고 간다고 이미 말해둔 뒤였다.
부자집인 민지의 집은 민지에게 많은 관심을 향하고 있어서 술 먹은 걸 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혜윤은 민지와 함께 집으로 향하며 말했다.
"괜찮아 민지야? 컨디션 사올까?"
"아 괜찮아 괜찮아."
묘하게 기분 좋은 민지를 보며 혜윤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기분 좋아보이네."
"응? 푸흡.."
민지는 혜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혜윤아, 우습지않아?"
"뭐가?"
"못생긴 년이 괜히 이겨보겠다고 나한테 아득바득 경쟁의식 갖는 거."
민지는 지혜가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중간고사 성적표 발표날 바로 깨달았다.
전교 1등한 자신에게 보내는 지혜의 시선은 민지가 너무나도 잘 알고있던 질투의 시선이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ㅋㅋ"
민지는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꼬우면 예쁘게 태어나던가, 지가 그따구로 태어나놓고 나한테 질투하면 뭐 달라져? 하여튼.."
혜윤은 민지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부축하며 말했다.
"민지야 너 너무마셨어, 우선 가자 얼른."
"네에~"
앞으로도 민지는 자신의 본성을 숨긴 채 살아갈 것이고 많은 이들의 질투의 시선을 받을 것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굴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외모, 두뇌, 화술, 몸매, 재력 인생을 살아가면서 말 그대로 이지모드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앞으로도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들로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멸시하고 승승장구 할 예정이였다.
어쩌겠는가?
인생이 본래 불합리한 법인 것을
판타지나 나올법한 마법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숟가락이 정해진 이 세상을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증거로 지혜는 자살했지만 세상은 아무도 그녀의 죽음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녀의 아버지만이 지혜의 영정사진 앞에서 며칠을 오열하다 탈진했을 뿐.
세상은 여전히 불합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