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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새로운 소중한 것

※아래 내용은 와타오시 번역님께서 번역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이 테일러 시점 이야기입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알레어가 게이트로 돌아간 직후에 벌어진 일.

나는 마물들로부터 전이 시설을 지키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최소한 알레어의 전이만이라도 마치면 저쪽의 전력은 충분.

이미 릴리도 저쪽에 가 있을 테니까 어지간한 상황은 충분히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엔 별다른 앙금도 없을 테고 말이지.


“하지만 이건 좀 머릿수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나를 포위하는 마물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뱀이나 두더지, 늑대에 까마귀, 심지어 형태를 알기 힘든 부정형 마물까지.

내가 계속 시설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니 아직 안까지 침입한 녀석은 없을 테지만, 이만한 숫자면 그것도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숫자를 좀 줄여둘까. ……쥬데카!”


수속성 마법 쥬데카.

초월 적성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마력으로 주변을 사정없이 휩쓰는 광범위 동결 마법이다.

여기에 어스 스파이크를 연계해 얼음을 부수면 연속 마법 고퀴토스가 완성되지만, 이번엔 마력을 아끼기 위해 생략했다.

얼어붙은 마물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이걸로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없나.”


얼어붙은 마물 쪽에서 새로운 마물들이 계속해서 솟아 나온다.

한 마리 한 마리는 별것 아니어도 머릿수의 차이가 너무 크다.

전이 시설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벽에도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으니, 이대로라면 밀리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래도 여기는 못 지나가. 뒤에는 학생들이 있거든.”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마력이 언제까지 버틸지 걱정이지만, 조금이라도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원군이 올지도 모른다.


해낼 수밖에 없다.


“핏 폴!”


지면에 넓게 구멍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마물이 밑으로 떨어진다.

핏 폴은 땅에 구멍을 만드는 단순한 마법이다.

장기전을 지속할 수 있도록, 가능한 간결한 마법을 사용하는 게 최선이다.

저비용 고효율을 노리자.


그 밖에도 땅을 솟아오르게 만드는 업 리프트로 흙벽을 만들어 진지를 구축하고, 공격 마법을 초보적인 마법탄으로만 한정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이 세상에 온 뒤 배우고 익힌 갖가지 싸움법을 남김없이 구사하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마물들은 거침이 없었다.


흙벽을 만드는 족족 사납게 달려들어 발톱과 이빨로 무너뜨린다.

마법탄으로 수를 줄이려고 노력해도, 오히려 점점 숫자가 늘어간다.

옛날에 마왕과 맞섰을 땐 한 개인으로서 극한에 달한 강함에 압도당했지만, 끝없는 물량은 그것과는 또 다른 공포를 가져다준다.

마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쓰나미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포기하지 않아…… 하진 않겠지만, 이건 좀…… 힘에 부치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던 걸까.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출혈이 체력을 앗아간다.

동시에 마력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눈앞이 깜깜하고, 시야가 좁아진다.

소리가 조금씩 아득해져 간다.

위험해.


그때 갑자기 마물의 공세가 멈췄다.


『끈질기군요. 인간치고는 제법 상대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역시 구세의 십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녀석은 마물들의 무리를 가르며 나타났다.


짐승 같은 털로 덮여있으면서도 인간 여성을 닮은 굴곡.

인간을 초월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육식동물 같은 탄력적인 몸.

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다.

등에는 박쥐를 연상시키는 날개가 뻗어 나와 바람을 받으며 부드럽게 흔들렸다.


“마족…….”

『정답.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 테일러.』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하는 마족.

공기를 진동시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텔레파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표정도 입도 움직이지 않아서, 어쩐지 여성의 얼굴을 가면으로 뒤집어쓴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이번 일의 흑막이라는 뜻?”

『그런 걸 물어봤자 소용없겠죠. 죽어가는 당신에겐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쉽게 죽을 생각은 없는데?”

『보기엔 이미 만신창이 아닌가요?』


분하지만 녀석의 말이 맞다.


“사실 원군이 오기로 되어 있거든.”

『그렇습니까. 그럼, 그 전에 당신만이라도 처치하도록 하죠. 당신과 클레어 프랑소와는 성가시니까요.』


블러핑도 통하지 않나.


『우리에겐 마왕님 같은 지고의 힘은 없지만, 우월한 숫자가 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여기서 지켜보겠습니다.』


마족이 손을 앞으로 치켜들자, 마물들이 공격을 재개했다.

밀려나기 직전에서 필사적으로 버텼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비명을 지르는 몸에 채찍질을 가하며, 꺾이려는 무릎에 완강히 힘을 주었다.


(어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필사적이지?)


원래 나는 그저 클레어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을 텐데.

무엇보다도 클레어가 최우선이고, 나머지는 뒷전.

그런데 지금 나는 클레어도 없는 곳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마물을 상대하며 죽음의 위기에 몰려 있다.


무너진 흙벽을 다시 세운다.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인 마력을 쥐어짜 마력탄을 쏜다.


(도망치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왜?)


왜였더라.

뭔가 있었는데.

클레어나 자기 자신 말고도 지켜내야 할 무언가가.


결국 마력이 바닥났다.

지금이 기회라는 듯 마물들이 밀어닥친다.

전이 시설에 덮어 두었던 방벽 한쪽이 무너졌다.


안 돼…… 저곳에는 내 소중한——.


그때 전이 시설 안쪽에서 터져 나오듯, 쏟아지는 마력탄의 소나기가 선두에 있던 마물 수십 마리를 처치했다.


“레이 선생님, 저희도 싸우겠어요!”

“유리아…….”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 제국에서 온 유학생이자 알레어 메이의 소꿉친구인 유리아가 마법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강의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려! 진형을 짜자고!”

“치유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 있어?! 레이 선생님을 치료해 줘!”

“숫자가 너무 많아! 마력은 최대한 아껴!”


내가 지켜야 할 학생들이 전이 시설 안에서 차례차례 나와 전투에 가세하기 시작한다.

아직 미숙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르친 것들이 확실히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내 학생들은 그저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스스로 싸울 줄 아는 강한 아이들이었다.


제자들이 눈앞에서 씩씩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잘 버텨주었어요. 뒤는 제게 맡기세요.”


앞에 있던 마물들의 무리가 업화에 휩싸여 증발했다.

이어서 다른 마물들도 하나둘씩 재로 변했다.

마물 무리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마족도 허를 찔린 기색을 보이며, 마법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아아,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이 눈으로도 그녀의 모습만큼은 똑똑히 알아볼 수 있다.


“클…… 레어…….”

“늦어서 미안해요. 이젠 걱정 말아요.”


어느새 나는 쓰려진 상태였고, 클레어는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자요. 초월급 포션이에요.”


대답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클레어는 직접 포션을 입에 머금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포션의 효과야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힘이 용솟음친다.


“고마워, 클레어. 솔직히 좀 위험한 참이었어.”

“더 빨리 달려오고 싶었지만……. 아뇨, 일단은 이곳을 정리하는 게 먼저겠네요.”


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는 일어나서 당당한 시선으로 마족과 마주했다.


“레이를 이런 꼴로 만든 게 당신이군요? 그에 상응하는 각오를 하도록 하세요.”

『클레어 프랑소와인가요. 분명 당신은 강하지만 이만한 물량에 맞설 수 있을까요?』


마족이 조롱하듯 말했다.

마물의 물량은 압도적이다.

아무리 학생들이 분전하고, 클레어가 지원을 와주었다고 해도, 이대로는 결국 밀리고 말겠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물량전이 특기인 분이 있거든요.”

『뭐라고요?』


마족의 의문에는 금방 대답이 나왔다.


“와라!”


깊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무수히 많다는 표현조차 우스울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불타는 병사들이 나타났다.


——미니언즈.


『그』의 마력으로 생성된 화염의 병사들은 마물들을 웃도는 압도적인 물량으로 모든 걸 불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봤을 때도 대단했지만, 지금 눈앞에서 진군하는 미니언즈의 숫자는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여어, 레이. 꼴이 말이 아니잖아.”

“로드 님.”


그 남성은 언제나처럼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우어 왕국의 전 제1왕자, 로드 바우어.

상식을 뛰어넘는 마력량을 가진 그는 높은 적성의 마법은 쓸 수 없어도, 물량으로 적을 유린한다.

옛날에 잃고 만 오른팔엔 의수를 장착했고, 어깨엔 투박한 대검을 매고 있었다.

대검을 잘 보면 마법석이 박혀 있는 걸 보니, 아마 마법 지팡이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무기겠지.


“자, 마족. 이래도 계속할 건가? 나야 상관없다고. 요즘 날뛸 기회가 없어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어.”

『로드 바우어까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형세가 불리하군요.』


그렇게 말하며 마족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놓칠 줄 아시나요?”

『쉽게 놓아줄 것 같지는 않네요. 하지만 제자들을 못 본 척할 수 있을까요?』

“?! 레이, 방벽을!”


다급히 학생들 앞에 세운 방벽 위로 검은색 마력탄이 부딪힌다.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날린 공격이었다.


“비겁한!”

『맘대로 말하시죠.』


학생들에게 주의가 쏠린 틈을 타, 마족은 이미 상당한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이봐, 너. 적어도 이름은 대고 가라고.”


상당히 작아 보일 정도로 멀어진 마족을 향해 로드 님이 독설을 퍼부었다.


『제 이름은 유누라고 합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비록 짧은 시간일 뿐이겠지만 기억해 주시길. 그럼 이만.』


그 말을 남기고서 유누는 멀리 날아 자취를 감췄다.


“……유감이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수습하는 게 우선이에요.”

“다친 사람 있냐—?”


다행히도 학생들 중 다친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클레어, 로드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새삼 무슨 말이에요.”

“맞아.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뒤늦게나마 군대가 행동에 나섰어.”


로드 님 설명으론 이번 마족의 습격은 바우어 이곳저곳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주요 대국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대응에 급급해. 초기에 게이트가 파괴된 것도 뼈아프고.”

“무사한 나라가 지원군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겠네요…….”


요 몇 년간 마족이 드러내놓고 일으킨 사건은 없었지만, 이번 일은 아주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벌어진 느낌이라는 게 로드 님의 의견이었다.


“우선은 이동하자고. 먼저 전이해 간 쪽도 걱정이지만, 클레어가 가르친 학생들이니 어떻게든 잘할 거야.”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이지만, 아마 뛰어난 학생들을 향한 신뢰가 담긴 말이겠지.

나는 좀처럼 걱정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저쪽엔 릴리도 있을 테니까 그녀가 잘해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일단 학원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가 매듭지어졌을 때,


“! 어떻게 당신이——.”


나타난 사람을 보고 클레어가 숨을 삼켰다.

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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